2011. 9. 17(토) : 앙카라-카파도키아

<한국공원[Korea Park]>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6·25전쟁 기념공원

1950년 한국의 6·25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희생당한 터키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을 본떠 만든 참전 기념탑이 공원의 중심을 이룬다. 기념탑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인의 명단이 적혀 있고 한글로 된 추도 글도 있다.

우리 일행은 희생된 터키 군인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한 뒤 방명록에 “오늘의 번영된 한국은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겠다.”라고 적어 그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표하였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터키어: Mustafa Kemal Atatürk, 1881 ~ 1938)는 터키의 육군 장교이자 혁명가, 작가 그리고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이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타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육군 장교였고, 오스만 제국의 패배 이후 터키 국민운동 소속으로 터키 독립 전쟁을 주도하였다. 케말은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에 대한 독재를 반대하여 청년 터키당에 가입하여 진보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서 큰 공을 세웠다. 1차 대전이 끝나자 연합국들이 오스만 제국을 침공할 때 그는 조국을 수호했다.

특히 1921년에는 그리스가 아나톨리아를 침공할 때, 사카르야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어 대 그리스 주의의 길을 끝내게 만들었다. 1923년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 장교들과 함께 앙카라를 장악하여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렸다.

1922년 11월에는 술탄제를 폐지하고 이듬해 7월에는 연합국과 새로운 조약(로잔 조약)을 체결하였다. 10월에는 자그마한 시골 도시에 불과했던 앙카라를 수도로 삼고 공화제를 선포하였으며 대통령에 취임했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1924년에는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터키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1925년에는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더욱 해방시켰다. 과거에 금지했던 남녀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남녀평등권을 제정하였으며 1928년에 터키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대체했다. 그 외에도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현재 터키에서의 위상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에서 독립 영웅이자 국부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계와 독실한 이슬람 신자들은 세속주의를 추구했던 아타튀르크를 혐오하기도 한다.


 

<Salt Lake (염호)>

육지에 갇힌 내륙 호수의 염분 (주성분은 염화나트륨) 및 기타 염류의 농도가 보통 담수호보다 높은 호수이다.

내륙 호수가 염호가 되는 이유는 미량의 염분과 미네랄을 포함한 담수가 하천에서 유입되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활발하게 증발되어 녹아 든 염분이 빠져나기지 못하기 때문에 수중의 염분 농도가 진해져서 만들어지게 된다. 증발이 활발한 형성 조건의 하나이기 때문에, 건조, 반건조 지대에 분포한 것이 많다. 유입되는 물의 양이 증발하는 물의 양보다 적은 경우 결국 염호는 소멸하고 갯벌이나 호수의 흔적만 있는 웅덩이에 소금 등의 염류 퇴적물이 모인 염류 평원이 된다.

염호와 염류 평원은 천연 염전으로 호수 소금이 채취되어 소금 등의 생산에 사용된다. 또한 염호와 갯벌의 높은 염분 농도는 염생 식물 등 주위에 독특한 식물 상 및 동물 군을 조성한다.



<카파도키아 [Cappadocia]>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중동부를 일컫는 고대지명.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었으나 차차 속국, 속주로 독립성을 잃어갔다. BC 6세기의 문헌에 의하면 당시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BC 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는 셀레우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는 로마에 충성을 바쳤으며 11세기까지 동로마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츠히사르>

화산재가 오랜 세월이 지나 응회암으로 형성된 ‘뾰족한 바위’라는 뜻의 우츠히사르는 거대한 바위표면에 비둘기집이라도 불리는 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으며 바위 주변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천연요새로서 그 내부에는 땅속 수백 미터 까지 우물을 파고 생활하였다. 또한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 내부의 성화를 채색하는데 사용하였다. 현재는 동굴 카페에서 Souvenir Shop 이 있고, 거실은 석탄이나 장작으로 난방을 하고 벽면을 파서 장식장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Posted by 블랑카사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