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수) 맑음 (마드리드 ⇒사라고사)
마드리드:이베리아 반도의 중앙부 서경 3°41′ 북위 40°24′ , 해발고도 635m의 메세타 고원에 위치 유럽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건조한 기후로 일교차가 크며 겨울 평균 기온은 -1℃∼7℃, 여름은 15℃∼30℃이다. 에스파냐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산업도시로서의 중요성도 크다 인구상으로는 유럽 제4의 대도시 마드리드는 10세기경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성은 마드리드가 수도로 된 후에는 왕궁이 되었음.
펠리프 2세가 당시의 강대한 왕국을 다스릴 중앙정부 청사를 건설하면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톨레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전도 바야돌리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구(舊)시가는 17∼18세기에 건설되었다. 1808년에는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로 유명한 5월 2일의 시민저항이 있었고,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보복이 있었다. 구시가의 중심은 라푸에르타델솔(태양의 문)이라 부르는 타원형 광장이며, 서쪽으로는 왕궁 및 부속 왕립 무기고와 통하고, 남서쪽으로는 17세기에 야외극장이었던 마요르 광장이 있다. 태양의 문 동쪽은 거의 남북으로 프라도가(街)가 뻗고, 그 동쪽에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에스파냐가 세계에서 자랑하는 미술관으로, 특히 에스파냐 3대화가인 엘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작품은 최고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 데르 바이덴의 《십자가 하강》, 보시의 《일락의 낙원》, 티치아노의 《음악을 즐기는 비너스》, 엘 그레코의 《오순절(五旬節)》, 벨라스케스의 《브레다 성(城)의 항복》 《궁녀들》, 고야의 《The Clothed Maja (옷을 입은 마하)》 《The Nude Maja (나체의 마하)》 등 수없이 많다.
《The Nude Maja (나체의 마하)》
《The Clothed Maja (옷을 입은 마하)》
"고야 선생님, 그림 하나만 그려주세요." 어느 날 알바 공작 부인이 이런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알몸으로 그려 달라는 것이었답니다...고야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부탁을 들어 주었습니다..공작부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멋진 자세를 취했습니다..고야는 붓을 들어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멀었나요?" 공작부인은 한 자세로만 오래 있다 보니 몹시 힙들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아직 색칠을 더 해야하오." 고야는 붓질을 계속했어요. 그림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갈 때... 바깥에서 누군가 후다닥 뛰어들어 왔답니다.. "큰일났소. 지금 남편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알바 부인의 남편은 평소에도 자기 부인이 고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었는데 그러던 중 고야가 부인의 알몸을 그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죠...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난 남편이 여러 사람과 함께 고야의 화실로 달려간것이었답니다.."뭐라고? 큰일이군!" 부인은 얼른 옷을 입었답니다. 고야 또한 급하게 그림에 옷을 입혔답니다..남편이 화실로 들어왔을때 이미 옷을 입은 부인의 그림이 완성되고 있었습니다..남편은 어리둥절 했지요..."아니, 이건 옷을 입은 그림이잖아!" 남편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답니다..고야와 부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새로 종이를 꺼내 원래 그리던 그림을 다시 그렸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한여인을 모델로 두 개의 그림을 그린 고야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하나의 에피소드 일뿐 실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고야는 46살 때 귀머거리가 되었답니다.. 당시 그는 깊은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함들게 살아갔죠. 이무렵 알게 된 사람이 미모의 알바 공작 부인이라고 합니다..그녀를 만난 이후로 고야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수 있었다고 합니다..이런 이유로 그림의 주인공이 알바 공작 부인이라는 얘기가 많이 떠돌았답니다..하지만 실제로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답니다..아마 위의 에피소드도 누군가가 꾸며 냈을 가능성이 높지요...그런데도 자꾸 그런 소문이 떠돌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알바 공작의 집안에서는 부인의 무덤을 파헤치려는 소동을 벌였다고 합니다..공작 부인의 체형과 골격을 비교해서 그 그림의 모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한 것지요... (재미있었나요? ㅋㅋ)
프라도 미술관(고야 동상의 전면 하단에는 "옷을 벗은 마야"의 석상이 있다는데 아뿔싸!)
일반적으로 세계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미술관은 -미국 뉴욕의 근대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미술관 이라고 하니 프라도 미술관의 명성은 과히 짐작할만 하다.또한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하면 루브르 박물관( Le musée du Louvre), 대영 박물관( The British Museum), 바티칸박물관 (Musei Vaticani) 라고 한단다.
세계 최초의 누드화를 그린 프란시스 고야는 '옷을 벗은 마하'(오른쪽 유방이 하늘을 바라 보고 있는데 성형외과 의사들도 그러한 작품(?)은만들수가 없단다)에서 그때의 미인의 기준은 미간은 넓고 뺨은 홍조를 띄고 가슴사이도 넓었다. 자세히 보면 이 작품은 여성의 음모가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라 한다. 고야는 정치화가이고 민중화가로서 그로테스크하고 내면의 광기와 폭력적이고 고뇌를 나타냈다. 1800년대 초에 나폴레옹 동생이 지배하던 시기에 정치권력 종교권력, 카토릭 왕족을 비판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 때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작품은 사뜨르노의 '제우스의 부' 라는 작품은 사람을 잡아먹는 그림인데 백성을 억압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항거를 나타내고 있고, '창녀와 바위'라는 작품은 화면의 중앙에 사람이 있지 않고 바위가 그려져 있어 이 작품은 창녀나 시민들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스페인의 화가 고야의 중심그림으로는나폴레옹 군대가 자국민들에게 저지른 동물적 만행을낭만주의의 필치를 통해 고발하는 그 참상을기록한 대표작이 바로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이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
세르반데스의 작품 "돈키호테"
원제 [재치넘치는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스페인의 시골마을 라만차의 지주인 돈키호테는 기사의 이야기를 밤낮없이 읽더니만, 거기에 너무 심취해 마침내 정신마져 이상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기사가 되어 세상의 비리와 부정을 도려내고 학대당하는 자를 돕기위해, 떨거덕거리는 오래된 갑옷을 입고 보무도 당당히 길을 떠납니다. 그의 애마 '로시난테', 수행비서 '산쵸' 돈키호테의 영원한 공주 '둘시네아 공주' 본명은 알돈사로렌스, 신부님과 이발사, 여관주인 등과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 동상에서
마요르 광장(Plaza Mayor)
북쪽에는 정부 관저, 동쪽에는 대주교 궁전, 오른쪽에는 성당, 맞은편에는 시관저가 자리 잡고 있다. 시관저와 정부관저 사이에는 프란시스코 피자로(스페인 정복자)의 동상이 서 있는데 시민들은 이 사실을 불쾌하게 느끼고 있다. 피자로의 사택으로 잘 알려진 정부청사와 성당, 교회, 맨션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이곳의 성당은 1555년 건축되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박으로 장식한 의자와 재단이 아름답고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자로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일 오전 11시 45분에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펼쳐진다. 마요르 광장은 규모면에서나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고 있는 광장이다. 펠리페 2세가 명하였으나 실제로 지어진 것은 그의 아들인 펠리페 3세가 재위 때이다. 스페인의 다섯 성인을 기리는 시성식 행사를 이곳에서 치렀고,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이 광장은 각종 공연장, 마녀재판과 사형집행, 왕가의 결혼행사장, 투우장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에 광장 주변에 위치한 가옥의 발코니들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왕가를 비롯한 귀족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마요르 광장은 차량 통제를 실시, 오늘날까지 이곳은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활기찬 광장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이면 우표 등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서기도 한다.
우리가 찾은 수요일에는 각종 performance 와 연인들의 적극적인(?) 사랑표현의 장소로 또 한쪽에서는 공연을 보면서 Beer 한 컵 아~목마르다 ㅋㅋ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사라고사(Zaragoza)
북동부 아라곤 자치지방(autonomous community)에 있는 사라고사주(州)의 주도(州都). 본래 이베리아족(族)의 도시였으나, 로마군이 전략적 위치를 중시하여 군사적 식민지로 건설했다. 그 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에스파냐 통일 때까지 아라곤 왕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나폴레옹 침략에 저항한 사라고사의 끈질긴 항전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피사의 사탑과 같이 기울어진 종루 등 역사적 유적이 많은 곳이다.
필라르 대광장 및, 필라르 성모성당:
사라고사(Zaragoza)는 아라곤 지방의 수도이자, 스페인의 5번째 대도시로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위치하여, 자연스레 물류,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원래 이곳은 켈트족의 거주지였다. 대주교관구인 사라고사에는 2개의 대성당이 있는데, 그중 더 오래된 살바도르 대성당이라고도 하는 라세오 대성당은 주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지만(1119~1520), 스페인 최초의 모스크가 세워졌던 곳에 건립된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의 흔적도 남아 있다. 바실리카 대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사원으로 필라르의 대표적인 상징 성당이 되고 있다. 산티아고 델 콤보스텔라의 성당과 함께 국가 유적으로 선언되었으며 필라르 성당은 스페인에서 가장 영적인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에브로(Ebro) 강가에 있는 필라르 성모 성당은 화려하게 타일을 붙인 11개의 둥근지붕으로 유명하다. 필라르(Pilar)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란 뜻인데, 옛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을 전파하러 온 야곱에게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성당의 천장에는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고야(F.Goya:1746~1828)의 천정화가 있다. 스페인 시민전쟁시 이 성당을 뚫고 들어온 포탄 2개가다행히 불발이 되었는데고야가 그린 프레스코화는 오늘날까지 무사히 보전되었다. 성당 중앙 제단 뒤로 가면 성모가 주었다는 기둥이 작은 구멍 사이로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 기둥에 키스를 하고 만지면서 기도를 하기도 하는데 오랜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방문과 만짐으로 인해 기둥을 가운데가 약간 파인 모습을 하고 있다.
성당 한 켠의 작은 보석박물관에는, 역대 성당 주교들의 장신구, 18C 귀족들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증한 각종 보석들이 전시되어있다. 그중에는 에바 페론의 귀걸이도 있다.
필라르 성모성당
바로크(Baroque :스페인어로 울퉁불퉁한 진주) 양식은 여백이 없고 멀티 포커스로 루비똥 제품처럼 표면이 입체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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