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7(토) ~8(일)

<크라코프>

폴란드의 수도(1320~ 1609), 특히 카지미에시 3세 시대에는 상업·수공업의 중심지로서 중부 유럽에서는 가장 세력이 큰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비스와강 연변의 언덕에 바벨 왕궁이 건설(16세기에 재건) 수도가 바르샤바로 옮겨간 뒤에 시세(市勢)가 위축되고, 1759년에는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 1815년 빈회의에 의해 크라쿠프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그 군정청 소재지가 되었으나 사적 등의 파괴는 면할 수 있었다. 구시가지 중앙의 리네크(市場) 광장, 13세기에 건립된 성모(聖母) 마리아 성당, 직물(織物) 길드관(館:스키엔니체), 바벨 왕궁 안에 있는 왕의 묘소 등 사적이 많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바벨성>

크라쿠프 남쪽 비스와강(江)의 상류 둔치에 있다.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000년 크라쿠프 주교에 의해 처음으로 건설되었다. 이후 알렉산데르(Alexander)왕과 지기스문트(Sigsmund) 1세 때인 1504년부터 1535년까지 전면적으로 개조되면서 르네상스 양식이 많이 가미되었고, 이때 비로소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11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 폴란드 통치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특히 르네상스 양식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 외에 바벨 대성당과 주변 건물들, 커다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타원형이며, 건너편 비스와강에서 볼 때 정면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이 바벨성, 성 왼쪽 앞에 2개의 첨탑이 솟은 건물이 바벨 대성당이다. 성 주위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성을 에워싸고 있다.


성 내부는 71개의 홀이 있고, 각각의 홀은 고딕식 회랑으로 연결된다. 성 안에는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각종 진귀한 유물들로 가득하다. 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바벨 대성당에는 20개의 예배당이 있는데, 이 가운데 황금색 돔으로 덮인 지기스문트 예배당이 가장 아름답다. 성당 안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과 예술품들이 많고, 지하에는 왕과 영웅들의 무덤이 있다. 지붕에 있는 지기스문트 종(鐘)은 음색이 맑고 음폭이 넓은 종으로 유명하며, 성 위에서는 비스와강과 크라쿠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월요일은 휴관한다.

                           <바벨성>

 

 

 

 

 

 


<아우슈비츠 수용소>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오슈비엥침(Oświęcim)이라고도 한다.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그 터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폴란드명은 오슈비엥침이다. 폴란드분할시대인 1772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가 1918년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39년에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였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 아래 나치스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흑백영화로 유대인 학살의 내용을 그린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소설 [안네의 일기]. 만화 [쥐] 등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그린 작품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금광산>

크라쿠프(Krakow) 시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염(巖鹽)광산이다. 13세기부터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하 9층 327m 깊이까지 개발된 거대한 규모다. 197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소금 광산 내부에는 180개 이상의 갱이 있고 2000여 개의 채굴이 끝난 빈 방들이 있으며, 갱도의 연장길이가 총 300㎞에 이른다. 700년 동안 약 2600㎦의 암염이 채굴되어 폴란드 왕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했다. 17세기부터 소금 채굴량이 줄면서 소금광산으로서 의미는 퇴색했으나, 수백 년 채굴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광산 내부 자체가 관광자원으로서 연간 8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소금광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광산노동자들이 채굴 뒤 남은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서 놀라운 예술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빈 공간을 예배당이나 운동장, 성인이나 유명인의 기념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내부에 수많은 조각작품을 남겼다. 모두가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광산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소금 예배당, 소금 운동장, 소금 조각-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지하 100m 지점에 있는 ‘축복받은 킹가 교회’라는 예배당이다.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시집오면서 소금광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왔다 하여 마을의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킹가 공주를 위한 공간이다. 길이 55m, 폭 18m, 높이 12m의 공간은 여느 지상의 예배당과 다를 것이 없다.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중요 장면들을 묘사한 부조와 기독교 성인들의 조각상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소금으로 만든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섬세한 부조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더구나 음향효과도 뛰어나 콘서트가 개최될 정도라도 한다.

 

 

 

 

 

 

 

 

 

 

 

   

                        <킹가 교회>

 


노동자의 수호성인을 기린 성안토니우스 예배당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으로 꼽힌다. 세월이 오래기 때문인지 많이 마모된 성인의 소금상을 볼 수 있다. 예배당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붙은 독특한 방과 조각작품들이 많다. 1493년 코페르니쿠스의 방문을 기념해서 만든 ‘코페르니쿠스 방’, 킹가 공주의 전설을 새겨놓은 ‘전설의 방’도 있다. 전설 속의 난쟁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묘사한 난쟁이 조각상, 왕의 조각상 등은 물론 깊이가 9m인 지하 호수도 있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좁은 갱도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아름다운 방들과 내부의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조각작품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암염의 치유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1964년에는 지하 211m 지점에 호흡기 질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이 들어섰으며, 130m 깊이에는 광산의 채굴 역사, 기술 발전사, 채굴 도구와 기계, 광산 지도 등을 볼 수 있는 소금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여느 관광객과는 달리 시간적인 제약이 없었고 좀 더 Detail 한 부분을 보려는 욕심으로 소금박물관을 신청했더니만 Extra Charge 없이 가이드가 1시간 20여분 동안 소금박물관의 상세한 설명을 해 주셔서 정말 기억에 남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유스호스텔에 돌아와서 짐을 챙겨, 특식을 해주는 Vice-president (?)의 환대에 감사하고, 우린 폴란드 Cesky krumlov에서 오스트리아 Salzburg까지 열차를 타고 14시간 동안을 밤새워 달렸다. 옆자리의 외국 관광객과 얘기를 나누었기에 그 관광객 덕분에 잘못 하차하는 실수를 면했다.

 

 

[ 8/7 폴란드 바벨성, 구시가지, 소금광산(17:00~20:25)

(1시간 개인 가족 가이드 안내로 광산 박물관 견학)

8/8 바벨성 외관과 왕궁내부 관람후 아우슈비츠 수용소 견학

22:50 KRAKOW 발,    오스트리아 착]


Posted by 블랑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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