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8.12

<밀라노대성당 ( Duomo di Milano )>

대주교 안토니오 디 사루초가 기공하였다. 본국 외에 독일과 프랑스의 건축가를 참가시켰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성당 건축 가운데 알프스 이북의 고딕적 요소가 가장 농후하다. 1951년에 완공 되었고 내부는 5랑식(廊式) 본당, 3랑식 익랑(翼廊), 주보랑(周步廊)이 달린 본전(本殿)으로 되어 있으며, 천장은 측랑(側廊)에서 신랑(身廊)에 걸쳐 계단 모양으로 높아지고 있다. 외부 벽면은 대소의 부벽(扶壁)과 번잡할 정도로 많은 소첨탑(小尖塔)으로 장식되어 얼핏 보아 지극히 호화로워 보이나 통일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밀라노대성당 ( Duomo di Milano )>

 

<밀라노 비토리오엠마누엘2세 갈레리아 ( 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개선문의 형상을 한 장엄한 모양의 5층짜리 아케이드로 두오모의 광장의 왼 편의 멋진 카페, 레스토랑, 명품 부티크들이 위치한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갈레리아 (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아케이드 쇼핑몰.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며 1877년 완공된 이 십자형 아케이드의 중심에 위치한 소 그림을 밟고 한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다.

철과 유리로 만든 지붕은 중앙의 팔각형 유리 돔으로 이어지며, 프레스코로 장식한 루넷에 늘어선 숍과 카페. 아케이드, 벽기둥,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상주(女像柱, 건축에서 기둥 대신 사용한, 옷을 걸친 여성상)를 올린 발코니로 이루어진 내부 입면은 19세기 건축의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건축 비용을 대기 위한 복권 사업이 실패하면서 영국 자본으로 지어지게 되었고, 덕분에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비토리오엠마누엘2세 갈레리아 입구> 

 

                          
<비토리오엠마누엘2세 갈레리아>

 

8/12(목)

21시 55분 밀라노 발 야간열차를 타고 다음날 아침 8시 03분 나폴리 역에 도착하여 시내 관광을 한 후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 항으로 향했다. 우리는 폼페이 유적지를 둘러보기에 일정이 빠듯하여 서둘렀다. 열차 밖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야한 광고판이 가족여행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먼저 베수비오 화산지를 둘러보고 소렌토로 해수욕장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호텔 (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떠나가는 애인에게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나니 곧 돌아오라‘ 라는 내용의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작곡자가 머물렀다 고 한다. )에서 피자 두판 ( 10,000 리라 & 16,000리라 )을 즉석에서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나서 구릿빛 건강미가 넘치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바캉스를 즐기는 그네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해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이리저리 돌아 내려갔다.

 

나폴리 ( Naples )>

영어명은 네이플스(Naples)라고 한다. 로마·밀라노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의 가로수가 끝없이 연속되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최저 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교차가 적은 점에서도 이탈리아의 도시 중 기후가 가장 좋다. 연중 온난하여 주변 일대에는 오렌지·올리브·토마토 등 과실이 많이 산출된다. 또한 부근의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에서는 맥류·과실류의 집산가공이 활발하다. 로마시대의 기본적인 가로망은 현재 시의 중심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를 통하여 나폴리에는 비잔틴문화의 영향이 강하였으나 12세기 이후에는 에스파냐 세력의 영향이 강해졌으며, 남이탈리아를 지배하는 나폴리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가까이에 있는 폼페이의 유적이나 카스텔 누보 등의 건물, 또 나폴리 민요·요리 등으로 관광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이태리 안타카프리섬 (나포리 항구에서 가깝다)          나포리항구 그리고 카프리        

동양의 나포리, 항구도시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1)         카프리섬과 아름다운 나포리항구

<베수비오 활화산>

높이 1,281m. 나폴리 동쪽 12km 지점에 있는 현무암질의 2중식 활화산이다

유럽대륙 유일의 활화산으로 산꼭대기에는 지름 500m, 깊이 250m의 화구가 있고, 그 안에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가 있다. 소마산(1,132m)이라고 부르는 외륜산(外輪山)과 중앙화구구와의 사이에는 아트리오라는 길이 약 5km, 너비 600m의 초승달 모양의 화구원(火口原)이 펼쳐진다. 베수비오산은 BC 8세기에 분화(噴火)했다고 하며, 63년의 지진으로 산기슭 일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79년 8월의 대분화로 폼페이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삽시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지하에 매몰되는 대참사가 있었는데 이 참사는 영국의 작가 E.G.리턴이 《폼페이 최후의 날》에서 잘 묘사하였다.

1631년에는 약 반 년에 걸친 진동 후 폭발하여 주변의 주민 1만 8000명이 희생되었고, 그 후에도 끊임없이 진동이 계속되어 산의 모습이 달라지고 분화구의 중앙에서 좀 남쪽에 화산구(火山丘)가 생겼다. 1944년에는 대용암류로 등산전차가 황폐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자동차 리프트로 산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둘레 72km에 이르는 화산 기슭을 둘러싸고 관광철도가 달리고 있다. 높이 600m 이하의 비옥한 화산 비탈면에서는 포도 ·오렌지류 ·호두 등의 재배와, 가축 사육이 활발하다. 산중턱의 서쪽 높이 약 600m 지점에는 1845년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화산관측소가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분화는 1973 ·1979년이며, 베수비오산은 나폴리 풍경의 상징으로 많은 노래와 회화, 문학작품에 인용된다.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한순간에 멸망한 폼페이의 유적이 19세기에 들어 발굴된 곳이다. 드러난 유적은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폼페이 유적지 ( Pompeii )>

현지인들은 폼페이 유적을 스카비(Scavi)라고 부른다. 유적지의 입구는 마리나 문(Porta Marina)으로, 당시 마을에서 항구로 통하던 길의 성문이다. 이 부근에는 폼페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바실리카, 아폴로 신전, 주피터 신전 등이 있다. 중앙광장인 포로(Foro)에는 도리아식 원주가 서 있고, 포로를 왼쪽으로 돌아나가서 마첼룸을 지나면 주요 건물 유적들이 있다. 파우니의 집, 베티의 집, 큐피드의 집 등 당시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 조각 등은 나폴리 북쪽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너스 신전(Tempio di Venere)

비너스 신전

 

공회당(Basilica)

공회당 (Basilica)

 

파우노의 집(Casa del Fauno)

파우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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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랑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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