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8/17(화)

<쇤브룬 궁전>

156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가 카터부르크 지역을 매입하였는데 그곳이 지금의 쇤브룬 궁전 터이다. 궁전 내의 공원과 다른 건물이 다 이곳에 있다. 황제는 이곳에 관심을 보였고 처음에는 동물원을 만들었다. 후에 그는 새로이 정원을 꾸미게 하였고 진기한 식물을 가져다가 식물원을 만들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쇤브룬 정원의 창조자로 불린다.


쇤브룬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으로서 빈의 왕궁이 인근의 물을 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오스트리아 왕족의 다수가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고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공격을 당하면서 성 전체가 복구 불능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가장 초기 궁전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황제들 각기 모두 장식을 추가하거나 내부의 배치 등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건축가 니콜로 파카시에게 로코코 양식으로 궁전을 건축할 것을 명하였고 황제의 결정에 따라 오스트리아 황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쇤브룬 궁전이 완성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궁전 건물은 로마 양식으로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으며 사치스러워 보이는 느낌은 피하였다. 안정적인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정원을 만들어 여타 유럽 궁전의 정원과 비슷한 형태이다. 조각상을 세워 둔 정원과 본 궁전 사이에 글로리에테가 있다.


언덕 꼭대기의 글로리에테를 그레이트 파르테레(Great Parterre)라고 부르는데 조각상이 열을 지어 세워져 있다. 대개 이 상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으며 같은 거리와 기하학적 균형을 고려하여 세워져 있다.

1918년 왕가가 붕괴하고 새로운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출범하자 쇤브룬 궁전은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가 연합군에 점령당했을 동안 쇤브룬 궁전은 영국군을 비롯해 연합국의 회담 장소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영국군의 빈 상주 군이 본부로 사용했던 곳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 1961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시쵸프의 회담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유네스코는 쇤브룬 궁전을 1996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하였으며 이는 주변의 정원도 포함된다. 유네스코는 쇤브룬 궁전의 바로크 시대 양식과 예술적 구조를 높이 샀다.

 

                       [2010년 가족여행 시 촬영]

 

 

 

 

 

 

 

 

 

<빈미술사박물관 ( Vienna Museum of Art History )>

독일의 건축가 G.젬퍼의 설계로 1891년 개관한 오스트리아 최대의 미술사 박물관이다. 돔 모양의 지붕이 있는 아담하면서도 거대한 석조 건물로 빈자연사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다.


16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와 17세기 중엽 레오폴트 빌헬름이 수집한 방대한 소장품을 모체로 세계 미술사 전반에 걸친 진귀한 작품들이 있다. 이집트의 조각, 그리스의 공예품,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작품 외에도 옛 왕궁의 보물, 무기, 화폐 등도 소장되어 있다.


P.루벤스의 대표작 《모피를 걸친 엘레나》, A.뒤러의 《모든 성인의 축일》, D.R.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 J.페르메이르의 《화가와 모델》 등을 비롯하여 괴기한 초상화가 G.아르킴볼도ㆍ틴토레토·라파엘·할스·푸생·카라바조·렘브란트·반다이크 등 중세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 밖에 P.브뤼헐의 대표작 15점을 모은 전시실도 있다.

 



<빈자연사박물관 ( Wien Museum of Natural History )>

1750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보관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국왕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제국광장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1889년 8월 10일 개관하였다.


과학박물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 Sunday Times》에 의해 세계 10대 박물관으로 선정되었다. 박물관 건물 앞에는 지혜로운 정치로 국민의 존경을 받은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의 동상이 서 있다.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관한 흥미진진한 수집품들로 가득 차 있는데, 라키오사우루스·아파토사우루스·앙킬로사우루스 등 공룡 화석이 많이 있고, 해충관·박제관·미생물관·동물관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술품인 조각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117kg의 거대한 토파즈(황옥) 원석, 약 1,500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마리아 테레지아의 보석 부케 등 3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빈 미술사, 빈 자연사 박물관은 위의 마리아 테레지아 공원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모양으로 건축됨.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빈 국립 오페라 극장(독일어: Wien Staatsoper)은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에 걸쳐 정부, 시청, 시민들이 눈물겨운 협력을 한 보람으로 전쟁에서 재건되어 1955년 가을에 복구되어 개장하였다. 궁정가극장의 후신인 이 극장을 사랑하는 빈 시민의 희망에 따라 외관은 옛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외벽의 새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고색창연한 옛모습의 아취를 살려 옛 도시다운 우아함을 보였다. 그러나 시설은 최신식이며 객석의 3배나 되는 광대한 무대는 몇 개로 구분되어 짧은 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여 장면 전환을 빨리 할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 객석은 2,200여개로 1층 뒤쪽에 입석이 있고 천장 객석에는 열렬한 팬들을 위해 악보를 볼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 있다. 예로부터 명지휘자와 많은 명가수가 이 곳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빈 필하모닉은 이 극장의 전속 관현악단이다. 또한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오페라도 이 관현악단이 중심이 되고 있다.

            

 

 

 

 

슈테판대성당 ( Stephansdom )>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서,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하였고, 1258년 빈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1359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헐어버리고 고딕 양식으로 개축하였고, 1683년에는 터키군, 1945년에는 독일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복구를 시작하여 대부분 옛 모습을 찾았다. 성당 이름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聖人) 슈테판에서 딴 것이다.

옛 건물이 가득 들어찬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다. ‘빈의 혼(魂)’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의 상징으로 꼽힌다. 공사기간이 65년이나 걸렸으며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이다.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눈에 띈다. 보헤미아 왕이 세웠던 '거인의 문'과 '이교도의 탑'도 남아 있다.

건물 내부에는 16세기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이 만든 석조 부조의 설교대와 15세기 말에 만들어진 프리드리히 3세의 대리석 석관이 있다. 그밖에 마리아와 예수상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지하에는 1450년에 만든 지하유골 안치소 카타콤이 있는데,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유골 약 2,000구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을 담은 항아리 및 백골이 쌓여 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과 장례식(1791)이 치러진 곳이며, 빈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슈테판대성당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20:23 빈 서역 발 (야간열차)

 

'오스트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차르트생가 (오스트리아)  (0) 2012.05.07
Salzburg(오스트리아)  (0) 2011.02.08
Posted by 블랑카사

사이드바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