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8()

 

Netherland

 Netherland 말로 Netherland는 독일어로는 니더란데(Niederlande)라고 쓰고 있는데, 낮은(Nieder) + 땅들(Lande)이라는 뜻이다. 운하를 만들고 바다를 간척하여 땅을 만들어내는 등 자연과의 치열한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소중한 국토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네델란드인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 는 슬로건을 자랑스럽게 얘기 하곤 한단다. 1953년에는 네덜란드 남서부의 제란트(Zeeland)에서는 둑이 터져서 약 2,000여명(정확히 1,835)이 익사하는 사상 최악의 재난이 발생했었다. 이후 네덜란드의 치수 및 제방관리 시스템이 훨씬 더 강화되었음은 물론인데, 이른바 델타 프로젝트(Delta Project)의 시행으로 제란트의 여러 섬들을 제방과 댐으로 연결하고 3.2Km에 이르는 육중한 방벽을 설치하여 다시는 뼈아픈 역사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Netherland는 동쪽의 독일 접경지대를 제외하고는 산(완만한 구릉)이 거의 없는 낮은 평지로 되어있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최적이다.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대도시만 그렇고 오히려 울창한 숲과 늪지대의 목초지 사이에 듬성듬성 놓인 전원마을들을 반갑게 만날 뿐이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이름인 홀란드(Holland)는 바로 이런 숲과 목초지들을 의미하는 홀트랜드(Holtland)에서 나왔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튤립을 필두로 세계 화훼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순도 95% 이상의 백인사회(Dutch: 켈트족과 게르만 족의 후손)이면서도 과거 자기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리남 등에서 이주해온 소수의 유색인종들이 차별 없이 잘 살아가고, , 구교간의 갈등은 물론 회교도에 대한 종교적 차별도 없는 관용의 사회이기도 하다. 뉴욕의 옛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 1609년에 네델란드인 Henry Hudson이 맨하탄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자기 도시 이름에다 New자만 붙인 것이 뉴욕의 시작이란다. 네덜란드는 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따뜻한 북대서양 난류로 인해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하루 중 또는 연중 일교차가 크지 않다.

 며칠 전 Google에서 8일부터 12일까지 Netherlands Belgium의 날씨를 보니 12도 에서 23도 정도로 여행하기 쾌적한 온도이고 Sunny day 로 나와 있어서 두 곳의 여행지 Ticketing을 하였었다.

 Depart London, Victoria Coach Station on August 8, 2012 9:30 PM  arrive Amsterdam, Zeeburg P&R coach park at Zuiderzeeweg at August 9, 2012  8:50 AM.

 런던 Victoria Coach Station 에는 영국의 각 도시와 독일의 베를린, 프랑스의 파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벨기에의 브뤼셀 등지로 떠나는  Megabus 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가족,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휴가를 즐기는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유럽의 장거리 버스에는 가운데 출입문 귀퉁이나 제일 뒤편에 간이 화장실이 있어 밤새 달려도 장, 단편(?) 해결에는 문제가 없다. 마침 내 옆자리에 호주에서 영국에 유학을 온 학생이 앉았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에 친구가 있어서 한번 와 본적이 있다며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말을 건넨다. 김치와 불고기의 맛을 기억하고 특히 노래방과 찜질방 문화에 흠뻑(?) 빠져 들었다나? 요즘 대세인 K-Pop 에 대한 얘기도 나누면서 한국의 위상이 확실하게 높아진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2012. 8.9()

밤을 새워 London- Ferry (도버해협)- Belgium- Amsterdam 에 도착하니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나를 반긴다. 시내지도를 구입하여 담락 거리- 담 광장(왕궁 & 기념탑)- 문트 탑- 꽃시장- 렘브란트 하우스- 레이체 광장- 국립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 하이네켄 익스피어린스- 안네 프랑크 하우스 를 걷기도 하고 Tram 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찾아 다녔다.  담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마담 투소 박물관이 있었는데 나중에 런던에 가서 볼까 한다.

 

 

 

 

                          왕궁

 

위령탑

 

 

담광장

 암스테르담의 모든 길은 담 광장으로 통하며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다. 원래는 암스테르담 중심부를 흐르는 암스텔강의 둑이 파손되었을 경우 도시가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13세기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왕궁, 신교회, 아주 높은 전쟁기념탑,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담 투소(Madame Tussaud)의 밀랍인형 박물관 등이 주변에 세워져 있다. 거리의 예술가들과 60년대에 유명했던 담광장 히피들(Dam Square Hippies), 많은 카페들로 인해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두산백과)

 

꽃 시장 (Bloemen Market of Singel)

 싱겔 운하의 문트 탑에서  코닝크스의 광장의 다리(Konings Plein)까지 운하 변에 들어서 있는 꽃 시장 (일요일은 제외)

 화훼산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의 Bloemen Market of Singel에는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꽃이 모여 있다. 특히 네덜란드 꽃인 튤립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깔을 만끽할 수 있어 들러 볼 만하다. 식충 식물, 마리화나 재배 도구 등 신기한 구경거리도 많다. 기념품으로 인기 있는 꽃씨를 구입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번 네덜란드 여행 중 치즈의 맛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꽃시장 맞은편에 있는 치즈 상점이 둘 있었는데 모든 여행객들이 치즈를 구입하든 하지 않든 모두 들러서 각각의 접시에 Sliced Cheese 를 맛보았는데 보통 시중에서 먹어보던 치즈와는 그 맛이 달라 꽃시장을 구경하다가 생각나면 다시 상점으로 들어가 치즈 맛을 보곤 했다. 정말 그곳에서 맛본 그 치즈맛은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Blog 에서 Herring (청어 초절임) 추천을 하여서 먹어보았더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아 억지로 먹었다. 사전에 예약한 민박집에 도착하니 주변환경은 공원이 있어 참 좋았다.

 

 

 

고흐 박물관

 안네 프랑크 하우스 처럼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을 하니 짐들을 보관시키고 절차가 까다롭다. 박물관은 불꽃처럼 타올랐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생애를 기념해 건립된 박물관인데 암스테르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세계 최대 고흐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작품 200여 점과 소묘 작품 500여 점, 고흐가 그의 작품 활동을 지원했던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본관 1, 2에서는 고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툴루즈 로트레크와 쇠라, 마네와 인상파 화가 19세기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고흐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소개하여 그의 작품 세계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층은 소묘 작품, 4층은 변색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상설 전시할 수 없는 편지 등을 기획전시하는 공간이다.(출처 : just go)

 후기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가인 반 고흐는 꽃의 섬세함을 포착하면서도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빛과 색채를 통한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으로 그의 짧고 비극적인 삶과 예술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 (14EUR)

 

국립 Rijks(라익)Museum 앞 I amsterdam 알파벳 조형물 앞은 기념촬영 명소.

 <명물 'I amsterdam '>

 

<  Rijks Museum Library >

 

<램브란트  야경(Night Watch)>

 

 

               <고흐 박물관 옆 뮤지엄 플레인>

 

       고흐가 자살하기 1주일 전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

 

 

렘브란트 광장 (Rembrandt Plein)

 광장에는 젊은이들의 Dance Battle 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그 주변 음식점들은 야외에 좌석을 마련하여 관광객들로 하여금 멋진 Performance 를 감상하면서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이 너무나 여유있는 모습이다.

 

 

 

레이체 광장 

 싱켈 운하 옆에 조성된 광장으로 주변에는 영화관, 극장,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카페, 패스트푸드점등이 많이 몰려 있어 젊은이들의 유흥가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지역. 광장 주변에서는 거리의 가수, 악사, 연주자들이 몰려든 관광객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 주고 겨울엔 이 광장 일부가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활용 된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Anne Frank's House) 

 유태인 소녀(Anne Frank) 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숨어 있던 곳.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인 사업가 오토 프랑크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자신의 독일 계 유태인 가족,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독일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왔다. 그러나 1941년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오토와 아내는 독일 노동 캠프로 이송될 일이 두려워 네 가족은 오토가 식품 회사를 경영하던 건물의 뒤에 있는 격리된 별채에 숨어 1942년에서 1944년까지 프랑크 가족과 네 명의 다른 이들은 별채의 축축한 방들에 숨어, 결코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친구들과 오토의 직원 중 몇 명이 가져다주는 식량에 의존해 살았다. 오토의 쾌활한 십 대 딸 안네는 생생한 일기를 썼으며, 그녀의 글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

밀고자들에 의해 배반을 당해, 프랑크 가족과 은신처의 동료들은 1944년 8월 나치에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살아남은 이는 오토뿐이었다. 안네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나 그녀의 일기는 별채에 있다가 빛을 보게 되었으며, 오토는 남은 일생 동안 이 일기를 출판하고 프린선흐라흐트를 박물관으로 개장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은 1999년에 보수와 확장을 거쳤다. (마로니에 북스 참조)

관람 대기자가 너무나 많아 외관만 보고 내부 관람은 생략.

 

 

 

 

2012. 8.10()

알크마르 치즈시장 

 매주 금요일 10시에서 12 사이에 치즈 경매가 이루어 진다. 일주일에 한번 정해진 시간에만 시장이 열리므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알크마르 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알크마르역에 도착하여 길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냥 한 무리를 쫒아가니 치즈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벌써 수많은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치즈경매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나도 겨우 비집고 들어가서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 작품(?)사진을 담아 본다. 돌아오는 길에 풍차마을도 들러보자.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알크마르 치즈시장을 보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꼬잔디크역 에 하차하여 지하도의 왼쪽에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자

동화 같은 분위기가 흐르는 잔세스칸스는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풍차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17~18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목조 가옥들과 크고 작은 풍차들이 인상적이다. 그림책이나 사진으로 봐왔던 네덜란드의 목가적 풍경이 고스란히 눈 앞에 펼쳐진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나막신과 치즈를 만드는 공장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출처 Just go)

 

 

 

 

 

 

 

하이네켄 박물관 

 치즈시장과 풍차마을을 둘러보고 나니 Battery가 방전되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망설이다가 일단 입장하여 여행객들에게 몇 장 사진을 부탁하고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는데 서울에 도착하여 보니 사진이 메일로 와 있었다. 기대를 반반 정도로 하였었는데 너무나 반가워 Dublin 에 있는 Guinness 공장 견학 시 찍은 사진을 보내 주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맥주 회사인 하이네켄의 체험 전시관이다. 1867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사용된 양조장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이색적인 맥주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영상 자료와 모형 등을 통해 맥주의 생산 과정과 역사를 생생히 볼 수 있다. 입장료를 낼 때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무료 시음권을 준다. 하이네켄 로고가 새겨진 다양한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17 EUR)

 

 

 

 

 

 

 

 오늘은 아주 역사적인 날이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과 8강 전에서 홍명보 주장의 승부차기가 성공하여 4이 되는 순간 우리 국민들은 환호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4강 신화를 달성하게 되었던 그 선수가 감독이 되어서 멕시코와 0:0, 스위스에 2:1 승리, 가봉과 0:0, 축구 종주국 영국에 0:0 승부차기 5:4로 승리, 일본과의 semi final 에서 2:0 완승을 해서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하다니 홍명보 감독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도다. 내가 항상 재능을 믿고 있던 박주영이가 한 꼴 기성용이가 한 꼴을 멋지게 해 냈도다.

 나는 Netherlands 여행 중이어서 다음날 아침에야 민박집 (Happy) 아주머니가 그 소식을 알려 주었다.

 

 

Posted by 블랑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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