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3국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2018. 5월11~5월19) 7박 9일 1,790,000

 

 

5월 11일 (금)

인천 국제공항 출발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 착

류블라나 근교 호텔 투숙

 

5월 12일 (토)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

         [류블랴나 시청사],[오벨리스크], [로바분수] ( 메스티니 광장에 이탈리아 조각가 프란체스코 로바가 만든 바로크 양식의 분수 )

 

류블랴나 시청사 앞 로바 분수의 뒷편에 [니콜라스 대성당]

 

 

프레세롄 시인과 황금가지를 든 율리아 슬로베니에에서 가장 존경받은 민족시인 프레셰렌은 부유한 상인의 딸 율리아를 사랑했으나 신분의 차이로 끝내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한 순간도 율리아를 잊은 적이 없었다' 라는 애틋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율리아의 집 ( 프레셰렌 동상이 율리아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프란체스카 성당] 프란체 프레셰렌을 기리기 위해 만든 [프레세르노프 광장]

[디어 마이프렌즈]에서 조인성이 고현정에게 청혼 하는 촬영장 광장 ^^

 

 

 

 

 

 

 

 

 

 

 

블레드 Bled

소박하면서 특색있는 푸른 빛 호수 블레드, 인구 6,000여명의 작은 마을로 줄리앙의 진주라 불리는 호반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빙하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로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나룻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블레드 섬 안에 성모 마리아 승천 교회가 있는데 이 종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슬로베니아의 북서부, 어퍼카르니올라 주에 속한 마을로 알프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동명의 지방 자치 지역인 블레드의 행정 중심지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블레드 호수(Blejsko jezero)가 있다. 산으로 둘러 싸인 빙하호(氷河湖)인 블레드 호수의 한 가운데에는 블레드 섬이 있으며 이 섬에는 15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다. 이 교회 내부는 1470년에 제작된 고딕 양식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가구들이 보존되어 있다.

블레드 호수와 인근의 트리글라브 국립 공원(Triglav National Park)에서 트레킹과 하이킹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이 마을을 거쳐 가기도 한다. 또한, 크렘나 레지나(Kremna rezina)라고 하는 슬로베니아식 바닐라 크림 케이크가 이 지역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두산백과)

  블레드 호수는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다. 둘레 6km의 작은 호수이지만 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졌다.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정말이지 그림 같다. 푸른 물비늘을 일으키며 햇살을 반사하는 호수와 그 호수 위에 떠있는 작은 섬,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은 방금 달력에서 오려낸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호숫가 절벽 위에는 블레드의 상징인 블레드 성이 자리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한 모습이 동화 속에나 나옴직하다. 마법에 걸려 잠에 빠진 공주가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성은 약 800년 이상 남부 티롤의 주교가 앉던 의자가 있는 성당이다.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족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성 한쪽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주로 검과 갑옷 등이 진열돼 있다.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와인을 시음해볼 수도 있다. 옛날 중세 복장을 한 와인 소믈리에가 반갑게 맞아준다. 슬로베니아 동쪽의 와인지대는 고대부터 중요한 와인 공급 지역이었다고 한다.

 

 

 

 

 

 

 

 

 

 

 

 

 

 

 

 

 

 

 

 

류블랴나 Ljubljana                                       

알프스와 지중해사이 슬로베니아 중부에 위치해 있는 류블라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슬로베니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수도가 된 이후에

현재까지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주요관광지로는 프레세르노프 광장과 트로모스토브예 등이 유명한 관광지 이다.

알프스산맥과 지중해 사이 슬로베니아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류블랴니차강(Ljubljanica R.) 하구에 자리잡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및 행정 중심도시이다. 기온은 최저 0°C, 최고 21.9°C로 연평균 강우량은 1,350mm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거주하였으며, 1335년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왕가의 통치를 받았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잠시 프랑스 일리리아 지방의 주도이기도 하였으며, 합스부르크왕가의 통치기간 동안에는 크라니스카(Kranjska) 공국의 수도로 중세시대 말 슬로베니아의 문화중심지가 되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됨에 따라 유고슬라비아왕국의 슬로베니아지역의 비공식적인 수도가 되었고, 1929년 유고슬로비아왕국의 드라브스카 바노비나(Dravska banovina)의 공식적인 중심도시가 되었다. 1941년에는 이탈리아에, 1943년에는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슬로베니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수도가 된 이후 현재까지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주요 유적으로는 류블랴나성(Ljubljana Castle)과 프레셰렌(Prešeren)광장 등이 있다. (두산백과)]

 

크로아티아의 심장 자그레브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네오고딕 양식의 자그레브 대성당인 [성슈테판 성당]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 캅톨(Kaptol) 구역의 정신적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완공이 되기도 전인 1242년 몽골족의 방화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몽골의 재침략을 막기 위해 그라데츠(Gradec) 구역을 중심으로 외벽을 쌓고 대성당을 재건하였지만, 1880년 대지진으로 인해 대성당은 또다시 수난을 겪게 되었다. 자그레브 성당의 현재의 모습은 중세 원형을 복원하여 1899년에 완공되었으며, 19세기 후반 네오고딕 양식을 취하고 있는 108m의 쌍둥이 첨탑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이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1993년에 발행된 크로아티아 화폐 1000쿠나(Kuna) 지폐에 등장하게 되었다.

 

 

자그레브 대성당(Zagreb’s Cathedrale)의 쌍둥이 첨탑

 

 

 

 

성 마르코 성당 [Crkva Sv. Marka, St. Mark Church]    

성 마르크성당 (St. Mark Church, Crkva Sv. Marka)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 마르크 성당, 지붕 왼쪽은 크로아티아 문장, 오른쪽은 자그레브의 문장입니다.

 

13세기에 지어진 성 마르코 성당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인 그라데츠(Gradec) 구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빨강, 파랑, 흰색의 아름다운 체크무늬 바탕의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르코 성당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건물 중의 하나로서 지붕의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문장이, 오른쪽에는 자그레브 시 문장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Ivan Meštrović)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벽화와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성 마르코 성당은 재건하는 데에만 25년이 걸린 만큼 고딕 후기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빼어난 외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수많은 내외국 관광객들의 칭송을 받는 관광 명소이다.

 

 

  

구시가지의 [반 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과 반 옐라치치 동상]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반 옐라치치 광장 주변은 현대적이고 고풍적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트램을 제외하고는 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광장이라고 합니다.

 

1848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전쟁 영웅 반 옐라치치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 시절, 동상이 제거되고 광장의 이름도 공화국의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 유고슬로비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다시 예전의 이름을 되찾고 동상도 제자리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예수회에 의해 17세기 초 세워진 바로크양식의 교회 [성 카타리나 교회]

성 카타리나 교회(Church of St. Catherine)

 

               자그레브 시가지

 

 

발칸반도는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가 뒤섞여 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의 화약고'라 불린다. 그 중에서 오스트리아 지배권에 있었던 크로아티아는 카톨릭 문화권에 속해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을 신봉한다. 유고연방에서 분리한 세르비아는 그리스정교회,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는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가 섞여있고 알바니아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돌의 문]

 

 

자그레브 구시가지를 돌다보면 신의 정원이라 불리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카톨릭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옐라치치 광장 왼쪽언덕에는 타일로 장식한 지붕이 크로아티아 국기를 연상케하는 성마르코 교회와 예수회에 의해 17세기 초에 세워진 바로크양식의 성 카타리나교회 등이 있다. 올드 그라덱으로 들어가는 4개의 문 중 북쪽문인 스톤게이트에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있는데, 16세기초 자그레브 대화재 당시 성모의 그림만 전혀 손상되지않고 남아 기적의 힘을 지닌 그림으로 추앙받기 시작하여 성지 순례지가 되어 소원을 비는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월 13일 (일) 

[라스토케 마을] (꽃 보다 누나가 묵고 간  동화같은 마을)

 

 

 

 

 

 

 

 

 

 

 

 

자연의 보고 [플리트비체]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16개 비취색 호수와 92개 폭포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너도밤나무, 전나무, 삼나무 등이 빽빽하게 들어선 짙은 숲 사이로 각양각색의 계곡과 폭포가 어우러져 원시림의 풍경을 자아낸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자연이 만들어 낸 완벽한 창조물로 194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197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Plitvice Lakes National Park)

석회암과 백악(chalk) 위로 흐르는 물은 수천 년 이상에 걸쳐 석회 침전물을 쌓아 천연의 댐들을 만들었으며, 그들은 그들대로 또 일련의 아름다운 호수, 동굴, 폭포 등을 만들었다. 이들 지질학적 과정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이 공원의 삼림 지대는 곰, 늑대 그리고 수많은 희귀종 조류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5월 14일 (월)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으로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성 야곱 성당], [평화의 성모당]

 

무릎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것을 적셔서 아픈곳을 대면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는 [치유의 청동 예수상]

 

 

 

[모스타르] 중세 터키식 건물과 조약돌이 깔려있는 아름다운 조약돌 길.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으나, 2004년 세계 각국의 지원으로 재건되어현재 보스니아 민족간의 화해를 상징하는 [스타리 모스트 다리]

 

 

 

 

 

 

 5월 15일 (화) 

드브로브니크

 

 

 

 

 

 

 

 

 

 

 

 

 

 

 돔 형태의 석조로 16개 면에 독특한 형상으로 조각된 분수[오노프리오스분수]

 

 

 

 

 

[

플라차 대로(Placa Stradun)

플라차는 길이란 뜻으로 베네치아어로 길이란 뜻의 스트라둔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원래는 바닷물이 흐르던 운하였던 자리에 길을 만들었는데 17세기 중반 대지진 후 다시 복구하면서 지금처럼 하얀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다고 합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연방군으로부터 두브로브니크가 포위되어 포격을 받아 도시의 70%이상이 파괴 되는 동안에도 피난가지 않고 내전이 끝날 때까지 성안에 남아 있었다는 아저씨입니다.

 

6개의 기둥이 보이는 렉터 궁전(Rector's Palace )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두브로브니크 시의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자 두브로브니크 정치의 중심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올란도 기둥(Orlando’s Column) 올란도는 14세기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맞서 싸웠던 영웅으로 칼을 쥔 손에서 팔꿈치까지 길이인 51.1cm를 두브로브니크의 표준 길이인 1(ell)로 사용한다.

 

[말라브라차 약국 ]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국에 들어가서 감기약을 사서 먹다. ^^

 

  [프란체스코 수도원]

 

5월 16일 (수)

<크로아티아> 스플릿 이동 [약 30분 소요]

▷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는 스플릿

  [리바 거리], [디오클레시안 궁전],

- 왼쪽 엄지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는 [그레고리우스 동상]

- 마리안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로 야자수와 노천 카페가 즐비한 [라바 거리]

- 1,700년 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마리안 공원]

 

▷▶아름다운 석양과 바다오르간으로 유명한 자다르

 

[나로드니 광장]

시민광장이라는 뜻의 흰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바닥을 포장한 나로드니 광장은 주변에는 노천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으며 광장은 가운데에는 15세기에 건축된 시청건물이 있는데 이는 3개의 고딕 양식 아치로 장식되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으며 현재는 민족박물관용도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다섯개의 우물]

 

자다르 구시가지의 관문이자 16세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벽 주변으로 우물을 만들었다.오스만 투르크족의 공격에 대비하여 비상 식수원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현재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있어 물을 길어 올리던 도르래도 남아 있으며 5개의 우물이 인상적.

 

 

[성 아나스타샤 대성당](12-13세기에 만들어진 성숙된 로마네스크 스타일)

 

바다 오르간으로 유명한 [자다르]  

            [ 바다 오르간]

 

 

 

 

 

 

 

 

 

5월 17일 (목)

크로아티아> 로비니 이동 [약 1시간 15분 소요]

 

▷▶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소도시 [로비니]

 

 

 

 

            [로비니 항구]

 

 

 

 

 

터키인과 베네치아인의 두상을 함께 조각해 놓은 올드타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메인 게이트인 [비바 아치]

 

로비니의 수호 성인인 유페미아 성인의 관이 모셔져 있는 성 [유페미아 성당]

 

                

 

 

 

 

    

 

<슬로베니아> 피란 이동 [약 1시간 소요]

 

▷▶ 아드리아의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피란]

[타르티니 광장]타르티니 광장은 피란 출신의 음악가인 쥬세페 타르티니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타르티니가 활동했던 시기는 피란이 이탈리아에 속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는 이탈리아에서 주로 음악 활동을 했었다. 그가 죽은 후 피란은 슬로베니아에 속하게 된다.

 

[성조지 성당] 피란의 성 조지 대성당은 피란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를 기념한 성당으로 1344년에 건축하였는데, 1637년에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로 재건되었다.높이 솟은 종탑은 1608년에 완공된 것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산마르코 광장의 붉은 종탑을 본뜬 것으로 종탑 꼭대기엔 대천사 미카엘 동상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이동 [약 1시간 소요]

 

포스토이나 동굴

자연미술관이라 불리는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르스트 동굴계로 길이는 20,570m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동굴이며 관광 명소이다. 이 동굴은 피브카 강(Pivka River)의 유수 작용에 의해 생성되었다. 동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혈거 양서류로 토착종인 올름(olm)이 웅덩이에 서식한다.

1872년에는 관광객을 위한 최초의 동굴열차와 함께 철도가 부설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스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전체 동굴 가운데 5.3㎞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혈거도롱뇽인 이 고장 특유의 올름(동굴도롱뇽붙이)이 서식하는 곳이다. 동굴을 통과하는 관광노선에 올름이 서식하는 웅덩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올름을 직접 볼 수 있다.

이 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혈거도롱뇽인 이 고장 특유의 올름(동굴도룡뇽붙이)이 서식하는 곳이다.  

                            올름(olm)

 

 

 

 

 

 

 

5월 18일 (금)

베네치아 Noventa outlet 으로 이동 후 자유시간

16:45분(베네치아 현지 시각) 베네치아 출발

5월 19일 (토) 10:50분 인천 국제공항 도착.

 

크로아티아[CROATIA]

서기 1000년경부터 아드리아 해 연안을 통제해온 베네치아 공화국에 저항하기 위해 주변의 슬로베니아·달마티아와 함께 1102년 헝가리 왕을 군주로 받아들였다. 헝가리는 1683년부터 1791년까지 크로아티아 등을 재장악하며 합스부르크 제국 내 슬라브족을 영접하기 위한 항구를 경계지역에 건립하였다. 크로아티아는 1867년부터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918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괴뢰 정권인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들어서기도 했다. 전후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과 내전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변국들의 난민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크로아티아에는 고대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궁전과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와 수메르 문화의 흔적들로 보여지는 유적들도 남아있어 그 고고학적 의미가 크다.

 

 

여행자들의 기착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크로아티아 북부 내륙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중유럽 도시로 1557년 이래 크로아티아 행정·문화의 중심지이자 수도로 기능하고 있으며, 동서양의 가교이자 최대 공업 도시로서 육상과 항공 교통의 중심지이다.

기계 · 섬유 · 전기 · 목재가공 · 제지 · 피혁 · 담배 등 공업이 성하며, 빈 · 부다페스트 · 베오그라드 방면과 연결되는 철도의 요지이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게르만적 문화를 계승했다. 언덕 위의 구시가에는 고딕 양식 · 바로크 양식의 성당 · 수도원 · 궁전 등 13∼15세기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호수공원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194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플리트비치 호수공원(The 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은 Mala Kapela산의 단층지역과 Licka Pljesivica의 돌출부분 사이에 자리잡은 호수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19,479 헥타르에 이르며 이중 14,000 헥타르는 울창한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고 작은 호수만도 16개 정도가 된다.

플리트비치 호수공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주는 것은 16개의 호수에서 떨어지는 멋진 폭포의 전경과 이곳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들이다. 플리트비치 호수는 카르스트 지형 수로 독특한 형태를 보이는 우리들이 흔히 보는 잔잔한 모양의 호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에메랄드빛 투명한 녹색의 호수가 주변의 울창한 숲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호수의 깊이는 약 636 미터 정도이며 이 호수들이 연결되어 코라나(Korana)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슬로베니아[SLOVENIA]

정식 명칭은 슬로베니아공화국(Republic of Slovenia)으로,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다.

면적은 2만 273㎢, 인구는 200만 7711명(2008년 현재), 수도는 류블랴나(Ljubljana)이다.

주민은 슬로베니아인 83.1%, 크로아티아인 1.8%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는 슬로베니아 를 사용하고, 종교는 가톨릭교가 57.8%, 이슬람교 2.4%, 정교 2.3% 정도이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이며, 경제적으로 구 유고 내에서 최대의 선진공화국으로서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60억 8400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932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인민의회(90석)과 임기 5년의 국가위원회(40석)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자유민주당, 국민당, 기민당, 사민당, 민주당, 사회당 등이다.

 

 

 

 

보스니아

모스타르(Mostar)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도시이자 자치제이며,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을 구성하는 주 가운데 하나인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 주의 주도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동안에 다리가 건설되었고 모스타르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다리는 1993년 11월 9일 10시 15분 보스니아 전쟁 기간 동안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당시 크로아티아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슬로보단 프랄랴크(Slobodan Praljak)는 다리의 파괴를 명령한 것에 대해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모스 타르의 역사

Mostar는 Bosnia & Herzegovina의 Herzegovina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드리아 해안과 중앙 보스니아 사이의 무역로에서 작은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1468 년에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습니다. 1566 년에, Suleiman the Magnificent (이스탄불로 콘스탄티노플을 변형시킨 같은 사람)의 명령에 따라, 나무로 된 다리는 돌로 재건되었고, 이 유명한 다리는 427 년 동안 세워졌습니다. 이 돌다리는 건축되었을 때 걸작이었으며 오스만 시대에 세워진 가장 중요한 구조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은 1878년에 이 지역을 장악하고 보스니아 & 헤르제고비나 (Bosnia & Herzegovina)가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된 1918 년까지 통치했다.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ia & Herzegovina)는 유고슬라비아 독립을 선언했다. 1994 년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전쟁에서 Stari Most가 파괴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리가 재건되었고 구시가 개조되었습니다. Stari Most는 2004 년에 재개되었으며 2005 년에는 Old Bridge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Koski Mehmed Pasha Mosque)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에서 오스만 건축의 또 다른 비범 한 작품을 대표합니다. Karadžoz Bey 모스크 외에도 모스 타르에서 가장 유명하고 기념비적인 사원입니다.

그것은 1618/19의 년에 지어졌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고전적인 오스만 건축의 큰 건설을 대표한다. 창시자는 Mehmed Koskija이며, Lala Mehmed Sokolovic 대령의 연대기였다. 그는 1611 년에 죽었으며 그의 형제인 마흐무드 (Malmud)는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Koski Mehmed Pasha Mosque)의 건축을 마쳤습니다. 모스크 외에도 그는 마드레사 (madrasah)를 만들었습니다.

브리지 다이빙

모스 타르 (Mostar)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유명한 다리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 다리에서의 다이빙은 주로 여름철에 일어나며 Stari Most의 꼭대기에서 다이빙하는 숙련된 전문가가 관중을 즐겁게 합니다. 다리 꼭대기와 강 사이의 거리는 약 20m이므로 사전에 훈련 수업을 들었던 전문가 나 관광객이 해야 합니다. Red Bull 's 절벽 다이빙 경쟁의 일환으로 공식적인 연례 대회가 있습니다.

 

Stari Most

Stari Most 보스니아 전쟁 중 1993 년에 파괴될 때까지 자랑스럽게 427 년 동안 거기에 서있었습니다. 전후 복원 노력 덕분에 2004 년에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었습니다.

요즘 관광객들은 교량으로 몰려들고 섹시한 사진을 찍고 용감하고 재능 있는 현지인들이 다리에서 뛰어내려 20 미터 아래의 추운 강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연습은 1664 년에 시작되어 모스 타르의 젊은이들에게 전통이 되었습니다. 1968 년에 도시는 정식 다이빙 대회를 개최했는데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리를 밟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리의 표면이 미끄 럽습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올려진 밟기가 있지만 부드러운 바위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발이 잘 붙은 신발을 신고도 발이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평평한 표면보다는 돌 위에 걸어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야경도 아름답지만 아침과 일몰의 강가의 환상적인 색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게 됩니다.

가능하면 관광객이 없는 시즌에 방문해서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슬픈 도시를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Posted by 블랑카사

사이드바 열기